『여자 없는 남자들』 은 헤밍웨이의 단편들을 역자가 임의로 추린 단편선집이 아니라 생전에 발간된 열네 편 전편을 그대로 완역한 단편집이다. 이 책은 1920년대의 헤밍웨이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헤밍웨이 가정사는 불우했다. 어머니가 어머니를 일찍 여윈 탓에 자신의(어머니) 꿈을 포기해야 했던 일로 심한 성격 결함을 갖고 있었고, 아버지와의 결혼은 불행했다. 헤밍웨이는 어머니를 잔인한 여자로 표현한다. 아버지의 자살은 어머니의 잔인함에 기인한 것으로 묘사한다. 전쟁 참여로 참혹한 현실을 경험하고, 수많은 여성과의 결혼과 이혼을 거듭한다. 어머니에 대한 인식은 더 나빠진다. 별장을 짓느라 돈을 아끼는 바람에 대학을 가지 못했다 생각을 한다. 첫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두번째 결혼에 실패한다. 아버지가 권총 자살을 한다. 아버지의 죽음은 어머니의 잔인한 성격으로 인한 것으로 헤밍웨이는 말한다. 전쟁 참전 후유증에 시달린다. 여기까지가 헤밍웨이의 고달픈 인생사다. 문학적 위업을 이룬 이야기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되었다.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를 쓴 헤밍웨이는 전쟁, 죽음, 마초적인 남성이 그의 작품에 묻어 있다.
『여자 없는 남자들』 을 읽기 전, 헤밍웨이의 여성관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좋다. 헤밍웨이는 전쟁 참전 후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있을 때 연상의 간호사를 좋아했으나 여자가 관계를 끊어 교제가 진전되지 않는다. 첫번째 부인은 열여덟살 위의 여자다. 부인은 나이만 많았지 어린아이 같은 기질이 있어 집 안에만 있는 부류인 탓에 살이 찌고 가정주부 같았다 한다. 헤밍웨이는 이 모습에 질려 불륜을 저지르고 그 사이가 들통이 나자 이혼하고 그 여자와 결혼을 한다. 이번에도 헤밍웨이 보다 나이가 많았으나 또래에 가까웠다. 네 살 위의 여자였다. 부유한 여자였고, 사교성이 있던 여자다. 하지만 두 아이를 가졌으나, 제왕절개 수술 후 더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자, 여성으로서 매력을 잃은 여자 대신 다른 여자를 찾는다. 헤밍웨이는 바람을 핀다. 그 여자는 신문연합의 특파원인 여류 작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를 썼을 때, 이 세번째 부인에게 바쳤다. 세번째 여자는 여류 작가로서 꿈을 가진 여자였는데, 헤밍웨이는 자녀를 갖고 싶어 해 둘 관계는 파탄난다. 네번째 여자는 타임지 런던 지사 근무 중에 만난다. 이 여자는 헤밍웨이의 죽음까지 함께 간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여성 편력은 멈추지 않는다. 다만, 네번째 부인은 헤밍웨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니스트, 내가 싫으면 싫다고 말해줘요. 그러면 곧바로 당신을 떠나겠어요. 앞의 세 부인들에게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행동으로는 당신에게 정 떨어지게 만들어서 그들을 쫒아내는 그런 방식은 나 한테는 안 통해요”
헤밍웨이와 사랑에 빠진 여성의 어머니가 이혼을 종용했지만, 헤밍웨이는 그동안의 여자들과 이혼을 했으나, 네번째 부인은 버리지 않는다. 순종적이었고, 영리한 처신을 했기 때문에 모험을 감행할 생각을 못했다.
『여자 없는 남자들』 가운데 단편 세 편을 앞으로 소개한다. 먼저, 「하얀 코끼리 같은 산」 이다. 단편집 제목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 소설은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전반적으로 에둘러 표현하는데, 독자는 추측하게 하는 기술을 사용한다. 작품에는 은유가 있고, 상징이 있다.
- Hills Like While Elephants (2023년 5월 1일)

「하얀 코끼리 같은 산」 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등장한다. 소설 속 풍경은 정체된 모습을 한다. 동적인 움직임이 아닌 정적인 움직임, 즉 남녀의 대화가 소설을 재미 있게 끌고 간다.
강이 흐르는 계곡 맞은편에는 산이 있다. 산을 마주하는 곳에는 그 흔한 나무 한 그루도 없었고, 볕을 피할 그늘이 없어 이글거리는 볕을 맞았다. 역사엔 건물이 있는 것이 그나마 볕을 가려 줄 커튼과 그늘을 제공했다. 미국인 남자와 젊은 여자가 기차를 기다리는 중이다.
두 남녀는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여자 : 저 산들은 하얀 코끼리처럼 보여요.
남자 : 나한테는 그렇게 보인 적이 없는데.
여자 : 그래요, 당신에겐 그렇게 보인 적이 없을 테죠.
남자 : 아니야.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을지도 몰라. 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 게 되지는 않아.
여자의 말에 남자는 말을 보태지만, 관점이 다르다. 여자는 코끼리라는 이상, 환상을 이야기하지만, 남자는 이상, 환상을 공유하지 못한 채 현실만 이야기하고 있다.
여자 : 아름다운 산들이에요. 저 산들은 실제로는 하얀 코끼리 같지 않아요. 나무들 사이로 보면 산의 피부가 코끼리 같은 색깔이 된다는 뜻이지요.
여자는 코끼리에 대한 물음을 넌지시 던진다. 남자는 기차가 오기 전까지 머무는 역사에서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기차는 현실이다. 산을 코끼리에 은유하는 이상과 환상에 빠진 여자의 마음은 제 시간에 도착하는 기차라는 현실을 생각하는 남자의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
여자 : 그 다음에 무얼 하죠?
여자 : 당신은 정말 그걸 바라나요?
여자 : 예전과 같이 당신은 나를 사랑해줄건가요?
소설은 남자와 여자의 대화 속에서 독자들이 추측할만한 단서들을 몇가지 제공한다. 역사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남녀는 어떤 수술 예정이라는 걸 암시한다. 여자에게 수술을 받는 게 좋겠다고 남자는 조언을 구한다. 다만 강요가 아니라 확언한다. 여자는 수술이 관계에서 정말 중요한 건지 의문을 던지며, 내켜하지 않는다.
여자 : 아니, 아니에요. 한번 빼앗기고 나면 다시는 그걸 되돌려 받지 못해요.
여자는 여성으로서 삶을 제거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남자에게 사랑받는 여성의 몸을 수술하면 더는 여성이 아니라 생각하고, 계속 남자에게 “사랑해 줄 건가요?” 묻지만, 남자는 기차라는 현실에 이미 몸을 태웠다. 남자에게 코끼리 닮은 산의 이상과 환상은 잡히지 않는 연기 같은 이야기다. 남자는 불안을 제거하고 위안을 주려고 말을 보태지만, 여자는 이 시간이 고통스럽다.
여자 :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입을 다물어주시겠어요? 비명을 지르겠어요.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시편 120:2-3)
- Today Is Friday (2023년 5월 2일)

「오늘은 금요일」 은 열두번째에 있는 단편이다. 소설은 단막극이고 희곡으로 쓰여 있다. 신약 성경에는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받고 죽은 이야기가 있다. 소설은 그 죽음의 현장을 주체적으로 참여한 목격자를 조명한다. 로마 병사 셋이 소설 속에서 등장한다. 병사들을 숫자로 표기한다. 십자가형을 당한 죄수를 목격한 세 병사는 생각이 저마다 다르다. 소설은 그들의 말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설명한다. 헤밍웨이는 죽음에 대해 많은 작품에서 드러냈다. 「오늘은 금요일」 에서 예수의 죽음을 신의 죽음이 아닌 인간의 죽음으로 표현했다. 병사 2의 대사들이 헤밍웨이가 생각하는 인간의 죽음에 가깝다. 병사 1과 병사 3은 헤밍웨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생각인듯 싶다. 병사 2의 입을 빌려 예수의 죽음을 헤밍웨이는 설명한다.
「오늘은 금요일」 은 십자가형을 집행한 로마 병사들이 등장하며 극을 시작한다. 시각은 밤 11시다. 장소는 술집이다. 죄수를 끔찍하게 사형 집행한 병사 셋은 그 장소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지 않고는 이 밤을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아 셋은 테이블에 둘러 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술집 가게 와인을 파는 주인장은 유대인이다. 유대인 와인상은 능글맞게 로마 병사 셋을 기쁘게 맞이한다. 좋은 술을 내다 그들 앞에 내려놓는다. 병사 1은 속이 안 좋은 병사 3에게 속을 달랠 수 있는 걸 부탁하자, 유대인 와인상은 무언가를 섞어 잔을 건넨다. 배에 탈이 났을 때 먹으면 좋다고 권한다. 병사 3은 단숨에 들이키고는 말을 뱉는다.
병사 3 : 젠장, 예수 그리스도 같군.
병사 2 : 그 가짜 경고꾼!
병사 1 : 그 친구 오늘 거기서 꽤 훌륭했어.
병사 2 : 십자가에서 왜 안 내려온거야?
병사 1 : 십자가에서 내려오길 원하지 않는 놈이 있다면 어디 데려와 보게.
희곡 형식의 이 소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주 삼아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대화를 들어 보면, 소설 속에서 로마 병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의 의미든 존경의 의미든 십자가형에 달려 있으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내려 올 수 있다 생각하는 것 같다. 병사들은 십자가형을 받아 들인 예수의 태도, 자세를 이야기한다. 병사 1은 처연히 죽음을 맞는 죄인의 자세에 감명 받아 훌륭했다 연신 손가락을 치켜든다. 병사 3은 죽음의 현장에서 죄인의 상태를 목격하고 몸서리치며 속이 울렁거리고 고통스러워하는 게 역력하다. 병사 2는 죽음의 형틀에 매달리며 손과 발에 못이 박히며 피를 쏟을 때, 예수는 왜 신의 아들이라 자처하면서 십자가에서 내려 오지 않고, 못을 박을 때 멈추라고 소리를 치지 않았는지를 불쾌해한다.
헤밍웨이는 인간의 죽음을 끔찍하게 생각해 피하고 싶고, 멈추고 싶어 하는 걸로 이해한다. 병사 2의 입을 통해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소설은 예수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낸 것이다.
병사 1 : 자네 그의 여자를 봤나?
병사 2 : 내가 바로 옆에 있었다니까.
(중략)
병사 2 : 그 여자 과거엔 돈이 좀 많았지. 그는 그 여자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지 않았어.
병사 1 : 아, 그는 운이 없어. 하지만 내가 보기엔 오늘 거기서 꽤 훌륭했어.
병사 2 : 그를 따라다니던 떨거지들은 어떻게 됐나?
병사 1 : 다 사라졌지 뭐. 여자들만 남아서 옆에 붙어 있더군.
병사 2 : 참 겁쟁이들 아닌가? 그가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을 보더니 아예 그걸 보려고도 하지 않고.
병사 1 : 여자들은 끝까지 붙어 있었지.
병사 2 : 정말 그랬지.
헤밍웨이는 예수의 여자들과 예수의 제자들을 병사의 입을 빌려 대조적이라 말한다. 예수의 여자들은 끝까지 붙어 있었고, 제자들은 다 사라졌다 조롱한다. 십자가형을 받고 있는 예수의 곁엔 여자가 있었다. 헤밍웨이의 『여자 없는 남자들』 은 남자들을 이렇게 비꼰다.
- Banal Story (2023년 5월 3일)

세번째 단편은 「시시한 이야기」 다. 페이지 수는 불과 세 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다. 스토리도 제목에 걸맞게 밋밋하다. 『여자 없는 남자들』 의 열네편의 단편 가운데 이 단편은 언듯 어울리지 않는 듯 한데, 헤밍웨이는 과감히 수록했다. 왜 그랬을까?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내용을 읽고 추론해 볼 뿐이다. 단정적으로 말 할 수는 없으나 책의 주제에 맞게 추측하는 것이다.
“어디에나 로맨스가 있다”
「시시한 이야기」 는 로맨스 이야기다. 어떤 로맨스 이야기일까, 이 짧은 이야기로 로맨스를 엮을 수 있을까 싶기만 했다.
“그건 멋진 소책자였다”
《포룸》 이란 잡지다. 예술과 문학, 과학, 현대 미술사, 역사, 시, 유명 인사들의 세평, 소설이 실린 잡지다.
“이 소설들을 읽어야겠다는 걸, 하고 생각했다”
“《포룸》 의 저자들은 주제에 맞게 말하고, 유머와 재치가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똑똑한체 하지 않고 결코 장황하게 말하지도 않는다”
잡지에는 로맨스가 펼쳐져 있다. 소설을 읽고 사랑에 빠진다. 왜 그럴까? 로맨스, 사랑에 빠진 것이다. 헤밍웨이는 투우사 이야기를 꺼낸다. 폐렴을 앓아 죽은 투우사의 부고를 전한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과 투우사 동료들의 장례 풍경을 전한다. 로맨스는 어디에나 있다.
헤밍웨이는 《포룸》 의 로맨스 보다 투우사의 죽음에서 로맨스를 느낀다.
“이런 사건들에는 로맨스가 있다”
로맨스란 무엇인가? 죽은 활자에서 로맨스를 느끼는 현대인들을 헤밍웨이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역동적인 생업을 뒤로 하고 질병(폐렴)에 쓰러져 가는 한 투우사의 살아 있는 로맨스를 밋밋하게 이야기한다. 이야기가 시시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