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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한 일

kimjaekyeong 2026. 4. 22. 13:50

이승우 <사랑이 한 일>(문학동네)

  나의 굄에 있는 인물 중 이승우는 유독 셀럽들이 좋아하는 작가다. 내가 이청준을 좋아하는 이유와 이승우를 좋아하는 이유가 같다. 둘의 글쓰기가 조금 비슷한 면이 있다. 관념적인 주제를 갖고 인간의 내밀한 부분을 묘사하는, 그의 소설에서 자주 신의 존재, 원죄 의식을 고뇌하는 인간이 보이는 특징이 있다.


  <사랑이 한 일> 은 창세기를 다룬 다섯 편의 단편을 묶은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소설쓰기를 페러프레이즈라고 생각한다. 페러프레이즈는 이미 쓰인 것을 다시 쓰고 풀어 쓰는 것인데, 번역과 같다.” 또한 작가는 “나는 내 소설들이 위대한 원작을 조심스럽게 가리키는 수줍은 손가락이기를 바란다” 고 말을 보탠다. 이렇듯 원작은 성경으로, 구약의 창세기다. 소설은 “무엇보다 사랑은 잘 말해져야 한다. 예컨대 말하지 않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말해져야 한다” 고 슬로건을 내 건다. 잘 말해져야 하는데, 말하지 않은 것과 같아야 한다고 못 박았다. 즉 다시 말해, 말씀은 잘 말해져야 하는데, 말하지 않은 것과 같아야 한다, 실로 말의 무게가 느껴진다.

  소설은 아브라함 삼대의 이야기다. 페러프레이즈로 쓰였다. 말하자면 연작소설이다. 성경 속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시대인데, 소설은 성경이 다루지 않은 시선으로 글을 전개한다. 아브라함이 누구인가. 신약의 첫머리에 아브라함의 이름이 시작되는, 오늘날 세 종교의 조상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조상이다. 믿음의 조상이라 일컫는다. 소설 사랑이 한 일은 이 아브라함의 믿음, 즉 그분의 사랑 이야기다.

  소설은 소돔의 하룻밤에서 출발한다. 하갈의 노래가 잇고, 사랑이 한 일이 이어, 허기와 탐식이 잇는다. 그리고는 야곱의 사다리로 도착한다. 이 다섯 편의 단편은 ‘사랑이 한 일‘에 도착했을 때, 독자는 소설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전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첫번째 소설인 소돔의 하룻밤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등장하는데, 아브라함의 직계는 아니지만, 롯은 아브라함과 연결된 중요한 인물이다. 롯과 그의 가족들이 잡혀 갔을 때 구출하러 군사를 동원한 전례가 있을 만큼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던 인물이다. 아브라함의 일대기를 두루 살펴 보기 위해선 그의 주변을 먼저 봐야 한다. 그래서 첫번째 소설인 소돔의 하룻밤이 맨 앞에 서술된 거라 본다. 두번째 소설인 하갈의 노래와 세번째 소설인 사랑이 한 일은 아브라함과 두 아들, 곧 부자의 이야기다. 네번째 소설인 허기와 탐식과 다섯번째 소설인 야곱의 사다리는 아브라함의 손자의 이야기다.

  소설의 특징은 작가의 문체와 시선에 주안점이 있다. 문체는 반복되는 문장이 주를 이루고, 논리적인 변증이 문장을 다시 덮은 형태로 글을 채워 나간다. 서영채 평론가는 이것을 논리의 힘, 미메시스의 힘이라 말한다. 글을 쓰고 다시 풀어 쓰고, 모방하고, 재현하는 방식이다. 자신과 격렬하게 싸우는 듯 한 글이 촘촘히 물고 물리며 나아가는 문체는 그래서 특별하다. 소돔의 하룻밤과 사랑이 한 일에서 이 문체가 두드러진다. 어릴 때 고전특선 영화를 본 적 있는데, 소돔과 고모라가 있다. 그때 유황불이 하늘에서 비와 같이, 화살 같이 쏟아지는 걸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마지막엔 아내가 소금기둥이 된 모습은 두려움 자체였다.

  소설 소돔의 하룻밤에 있는 글로 작가의 글쓰기를 엿볼 수 있다.

  •   “살피기 위해서는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말하자면 시야가 좁아지고 매몰되면 아예 시야가 없어진다. 내부자는 내부 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도 잘 보지 못한다. 담은 경계를 위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움직임과 소리를 차단하고 살피는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담을 쌓는다. 담이 만들어지면 내부와 외부가 생겨난다. 담 쌓기는 거리를 없애는 기술이다. 그런 점에서 담이 둘러 쳐진 집은 밀폐용기와 같다. 밀폐된 집에 들어간 사람이 살필 수 있는 것은 집주인이 보여주려고 한 것, 꾸며낸 것, 위장한 것, 연출한 것밖에 없다. 살피는 자가 보려 하고 보아야 하는 것은 꾸미지 않은 것, 감추지 않은 것, 연출하지 않은 것인데, 그것은 집주인이 보여주려고 하지 않은 것이다. 집주인이 보여 주지 않으려고 감춘 것을 들춰내서 살필 수 있는 방문자는 없다. 집주인의 초청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주인이 보여 주려고 한 것으로 제한된다. 그러니까 살피는 자는 집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되는 것이다


  성경을 살피는 작가라면 외부의 시선으로 들어가야 한다. 불편한, 살필 수 없는 것들에 시선을 둬야 한다.

  세번째 소설인 사랑이 한 일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라고 밝히며, “아버지는 침묵을 택했고, 그 시간은 봉인되었다” 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사랑하지 않거나 조금만 사랑하기가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사랑은 참으로 무서운 거예요”, 사랑 때문에 일이 일어났는데, 그래서 사랑은 무섭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사랑의 얼굴을 보여준다. “고통스러운 사랑의 얼굴이었다”.

다섯번째 소설인 야곱의 사다리에 와서는 “그분은 어디에나 계시지만 자신을 드러내겠다고 결정할 때까지는 스스로를 숨긴다는 것을, 그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오직 그분이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로 결심할 때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승우, <사랑이 한 일>(문학동네)


  아브라함의 사랑이라는 역사는 사랑이라 불렀으나, 편애였다. 다시 말해, 편애의 역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 사랑이 두렵다. 이 소설은 페러프레이즈다. 연작소설이고, 성경을 새로운 말로 풀어 쓴 번역이고, 성경 주석이다. 작가의 힘이 느껴진다.